불교미술을 보는 눈
김영재 저 / 사계절출판사
다른 달마도(그림1-15)를 하나 보자. 동성스님이 그렸다.
스님은 선화를 선정(禪定)으로 향하는 방편으로 보고 있다. 또한 선화라는 것은 선정삼매를 화폭에 담기 위한 여기나 취미활동에 불과하다고 본다. 선(禪)은 한 마음으로 사물을 생각하는 것이고, 정(定)은 한 생각자리가 조용하게 자리잡힌 상태를 말한다. 삼매(三昧)는 마음자리가 하나로 정해져 움직이지 않음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선화라 함은 선정삼매에서 그려지는 일종의 마음 수행이라 할 수 있다. 동성스님의 달마도는 선정의 상태를 달마라는 형상을 통해 고착한다.

김영재 저 “불교미술을 보는 눈 30쪽 중에서”




달마도에도 구경(究竟), 이를테면 최상의 목적이 있는가?
선수행의 방편으로 달마도를 그린다는 동성스님에게 물었다. “구년 동안 벽만 바라보고 수행했다는 달마대사의 초인적인 집중력, 깨달음의 표정을 어떻게 표현하십니까” 스님은 말했다. “눈동자를 한쪽으로 점안하는 것은 직관을 의미하고, 얼굴을 수묵담채로 표현하는 것은 집중력을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물었다. “직관과 집중력을 보여주는 달마상에서 어떤 것을 볼 수 있을까요” 스님은 대답했다. 그 대답은 프랑스의 화가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의 말을 연상케 했다. 루오는 그림 앞에서 사람들이 모자를 벗을 수 있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림에 나타나는 달마는 세상을 관조하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림을 보는 사람이 그림을 통해서 정신을 가다듬는다거나 옷매무시를 가다듬게 하는 표정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재 저 “불교미술을 보는 눈 194-195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