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의 직관적 경지를 잘 살려
동국대, 철학 / 김 용 정
절세의 문장가(文章家)이자 묵화가(墨畵家)이기도 했던 소동파는 그의 논서에서 “서예(書藝)는 필히 신(神)*기(氣)*골(骨)*육(肉)*혈(血)이 있다”고 말하고 “그 중에 어느 하나가 빠져도 완성된 서예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서예가 본래 형사(形似)로서의 사자(寫字)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신태(神態)와 마음을 표현하는 사의(寫意)에 있다고 한다. 물무유조(物無遺照)니 무형지상(無形之相) 이니 하는 것도 이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현대의 추상예술이 사실적인 형태보다 무형의 정신적 예술성을 중요시하는 것과 같이 서예는 일종의 추상예술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도자인 동성스님은 이미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진바 있거니와 그 전시를 통한 서품(書品)이나 화품(畵品)에는 신*기*골*육*혈에 하나 더하여 도(道)가 담겨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달마상의 다양한 자세와 표현은 기존의 것보다 훨씬 선가(禪家)의 직관적(直觀的) 경지를 잘 살리고 있다. 그래서 스님의 작품들은 견실한 필법과 더불어 선적(禪的)인 심층적 예술성이 잘 표현 되어있다고 할 것이다. 글과 그림에 무지한 졸자가 보아도 그 묵필(墨筆)과 화선(畵線)의 우아함과 골격의 정기 어린 표현력은 가히 천부적인 구상력(構想力)에 기초한 것이라 할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수도자의 예술 창작행위가 단지 여가의 선용으로 비하 될 수도 있으나 진정한 달도(達道)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종교 속에 예술이 있고 예술 속에 종교가 있는 만큼 그 둘을 공유(共有)한다는 것은 참으로 천혜(天惠)의 지복자(至福者)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동성스님은 일찍이 이 둘을 공유한 천혜의 예술가이자 구도자(求道者)로서 중생정화 (衆生淨化)의 무거운 책임을 느껴 붓을 들었으리라고 짐작 된다. 이는 스님의 모든 작품들 속에서 그러한 신기(神氣)와 보살정신(菩薩精神)이 표출되어 있음을 역력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스님의 그 성실한 품격과 천부적 자질을 살려 수도(修道)와 예도(藝道)를 지관쌍수 (止觀雙修)하여 조탁동시(彫啄同時)의 알을 깨는 작업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1993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