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동성스님의 선화세계
아티스트 발행인 / 지 명 수
동성스님은 “달마대사의 본원(本願)을 통해 일체 중생들의 삶과 생명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우고자 달마상을 화폭에 옮긴다” 고 말씀하신다. 어린 행자시절 달마도(達磨圖)를 만나 근엄한 모습과 매서운 눈초리에 매료되어 틈틈이 그런 그림을 모사하면서 시작했다는 스님의 독자적인 화업(畵業)은 이제 어언 삼십여년이란 세월로 이어졌다. 강산이 세 번쯤이나 변했을 시류(時流)로 보면 스님의 화업은 중간 결산적인 의미가 있겠으나, 구도적인 의미로는 중생을 위한 교화방편의 큰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지난 4년전 일본 삿뽀로 초대전에 동성스님과 함께 동행하는 기연을 갖게 되었는데 작품을 설명하던 스님은 “자신의 참모습을 보는 것이 곧 부처를 보는 것이다” 달마대사가 마주하셨다는 벽(壁)은 “나의 내면세계를 반영하는 마음의 벽이다” “번뇌의 파도를 고요한 마음
으로 다스리고 그 속에 있는 나의 참모습을 직관하면 편안한 마음을 얻는다” 고 하였다. 이때 참관하던 많은 대중들과 함께 깊은 감응을 받고 스님의 달마도는 본원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는데 인색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즉 동성스님의 달마도에 정제된 균제미(均齊美)는 수묵담채의 선염(渲染)으로 거친 필묵을 일필휘지 하는데 그 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긴장된 정신의 인상을 통해 직관(直觀)*집중(集中)*통찰력 (洞察力)의 표현으로 절정을 이루면서 은근한 해학미가 번득인다. 풍진세파를 비웃듯 떨치라는 이 해학미는 선(禪)적인 경건한 분위기와 함께 힘이 넘치는 역동감으로 이어져 한껏 매력을 발산하면서 선정(禪定)의 참 뜻을 성찰하게 만든다.

지난날 옛 선사들께서도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처절한 고행에 이어 하화중생(下化衆生)의 험난한 만행(萬行)중에도 묵향파적(墨香破寂)하는 순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훌륭한 선서화(禪書畵)가 전해 오는 것처럼 동성스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어린 나이에 큰 기연으로 불가(佛家)에 입문하여 피눈물 나는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청허심(淸虛心)으로 유심정토(唯心淨土)를 이루고자 했던 집념어린 선화세계는 바로 구법일념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님은 바로 이러한 구도정신으로 달마대사가 동쪽에 오신 까닭을 무애한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1월